제목 누가 이 사람을 아시나요? 작성일 2017-05-18 조회수 3609

누가 이 사람을 아시나요?

 

이연세, 육군 대령(자유기고가)

 

1월 1일 아침에 찬물로 세수하면서 먹은/ 첫 마음으로 1년을 산다면(중략)

첫 출근하는 날/ 신발끈을 매면서 먹은 마음으로 직장일을 한다면(후략)

 

시인 정채봉의 ‘첫마음’이라는 시를 읽을 때마다 소대장으로 군 생활을 처음 시작했던 1984년이 떠오릅니다. 장교로 임관 후, 소정의 교육을 마치고 중부전선의 한 대대에 소대장으로 보직을 받았습니다. 그 당시 소대장에게는 전령이라고 불리는 무전병이 비서처럼 따라다녔습니다. 전령은 소대장의 총이며 전투화, 심지어는 모든 옷까지 세탁해 주었습니다. 지금이라면 있을 수 없는 일이겠지요.

 

소대장 시절 몇 명의 전령이 교체되었지만 33년이 지난 지금도 가슴 먹먹하게 떠오르는 한 전령이 있습니다. 소대장으로 보직된 지 6개월 정도가 지났을 때 새로운 전령을 뽑았습니다. 그 전령은 이 일병으로 눈이 두꺼비처럼 생겼으며 고집 세고 무뚝뚝했지만, 충성심 하나는 그 누구도 따라올 수가 없었습니다. 그는 아침에 출근하면 군복도 챙겨주고 지난밤 소대에서 일어난 일들을 소상하게 보고했기에 소대를 지휘하는데 많은 도움을 받았습니다.

 

저는 그런 전령을 잘 챙겨 주었습니다. 초겨울의 어느 날, 이 일병은 휴가를 나가서 깡패들과 싸웠고 병이 깨지면서 손등에 심한 부상을 당한 상태로 귀대했습니다. 저는 그런 전령을 안타깝게 생각하여 두툼하고 튼튼해 보이는 국방색 벙어리장갑을 사주었습니다. 이 일병은 장갑을 받아들고는 한동안 말이 없더니 눈물을 글썽거렸습니다. ‘꾸중을 들어도 시원찮은데 오히려 장갑을 사주다니…’ 라고 생각했을까요.

 

그해 겨울은 유난히 매서운 날씨가 계속되었습니다. 우리 대대는 영하 20도 이하로 내려가는 혹한 속에서 야외훈련을 나갔습니다. 얼마나 날씨가 추웠는지 가스버너마저도 얼어서 작동이 되지 않을 정도였습니다. 땅이 꽁꽁 얼어서 팩이 박히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는 대충 텐트를 쳤습니다. 그렇게 텐트를 치고 누웠는데 추위 때문에 도저히 잠을 잘 수 없었고, 할 수 없이 전령을 불러 한 텐트에서 잠을 청했습니다.

 

다음날 새벽, 엉거주춤 일어나 전투화를 찾으니 꽁꽁 얼은 전령의 것밖에 보이지 않았습니다. 저는 “이 일병! 내 전투화 못 보았나?”라고 물었습니다. 이 일병은 부스스 일어나더니 “죄송합니다. 소대장님! 제가 먼저 일어났어야 하는데” 하며 가슴속에서 비닐봉지에 싼 저의 전투화를 꺼냈습니다. 추위에 떨면서도 소대장의 전투화를 따뜻하게 해주기 위해 전투화를 가슴속에 품고 잤던 것입니다. 순간 둔한 망치로 머리를 한 대 맞은 것처럼 멍해졌고, 눈물이 ‘핑’ 돌았습니다.

 

저는 혹한기 훈련을 끝낸 직후, 바로 다른 부대로 전출을 가게 되었고, 마지막으로 전령과 함께 저녁을 먹었습니다. “이 일병! 그동안 고마웠다”고 말하며 손을 잡아주자 전령은 눈물을 펑펑 쏟았습니다. 제 눈에서도 눈물이 흘러내렸습니다. 그 이후 대대를 방문해서 한 번 더 얼굴을 보았고, 그 전령은 병장으로 만기 전역을 했습니다. 어느 날 본가로 전화를 했더니 전역 후 집을 나가서 돌아오지 않는다는 모친의 말만을 들었습니다.

 

지금도 겨울만 되면 그 전령이 더욱 보고 싶습니다. 저는 따뜻한 그 전령의 사랑을 가슴에 새기며 33년간 군 생활을 해왔습니다. 그동안 수많은 장병들과 인연을 맺었지만, 꼭 만나고 싶은 단 한 사람을 꼽으라면 단연 그 병사를 꼽을 것입니다.

 

지금 그 전령을 만난다면 그의 손을 내 가슴에 꼬옥 안고 “정말 보고 싶었습니다. 그때는 정말 고마웠어요. 그동안 잘 살았죠” 라는 말과 함께….

 

(월간에세이 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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